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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시절 김종서, 시나위를 떠났던 이유

나는 록의 전설이다 김종서 편

김종서 리즈 시절
나이 23세 김종서의 리즈 시절 모습. 훗날 가수 이수영은 어린 시절 김종서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밝힌다. 그녀는 < 2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 >에 출연하여 “예전에 김종서를 좋아했다. 가수로보다는 남자로 좋아했고, 내 남자친구라 생각했다. 김종서 오빠와 결혼까지 꿈꿨다”라고 고백. 이어 이수영은 중학교 때 자신의 방에 전시해둔 김종서 브로마이드와 스크랩북 등을 부모님이 버려서 펑펑 울었던 과거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뼈아픈 박탈감과 마포대교 아래의 절규

80년대가 낳은 또 한 명의 대표적 록커 김종서.
그는 당시 시나위의 승승장구를 가장 뼈아프게 바라보고 있던 사람이었다.

시나위 보컬 김종서

시나위 1집 앨범에 임재범이 보컬로 나오자
‘저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는데’라는 어떤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저는 시나위 1집이 나왔을 때
시나위 1집 앨범에 임재범 씨 보컬이 딱 나왔을 때
아, 저게 난데, 저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어떤 박탈감? 그런 게 있었는데

시나위 김종서

시나위 2집
시나위 2집/1987년 6월 발매

임재범이 군대에 가고 이듬해 발매된 시나위 2집,
김종서는 이 앨범에서 노래는 물론 작사 작곡으로도 참여했는데.

김종서가 시나위를 떠났던 이유

는 다름 아닌 노래 실력 때문.



사실 그는 임재범보다 먼저 시나위의 보컬을 맡았었다.

타고난 고음을 가졌지만
록 음악은 보컬의 실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에게 신대철이 있는 시나위는 꼭 함께하고픈 밴드였다.

정말로 두고 보자. 내가 진짜
목표는 그거였어요
너희들이 다시 나를 부를 때까지 내가 연습한다
결국 저를 다시 불렀잖아요

김종서는 자는 시간을 빼고는…… 잘 때는 음악 듣고 자고
일어나면 그때부터 계속 발성, 산에 올라가서 발성하고
1년 동안 날마다 한강 마포대교 아래를 찾아가 연습을 했다.

김종서 발성 연습
김종서 시나위 공연
시나위 김종서와 신대철

새가 되어 가리
새가 되어 가리
작사: 강기영 / 작곡: 신대철

1987년 공연

열정과 투지, 꿈을 내던지고 만들어진
시나위 2집에도 뜨거운 파도가 이어졌다.

신대철의 기타를 탄 김종서의 노래는
그야말로 새가 된 듯 무대를 날았고
사람들은 이제 TV를 통해서도 이 시끄러운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로 완벽했어요

그거 아세요? 밴드가 호흡이 너무 완벽하게 맞아서
하나로 딱 갈 때는요

정말로 기어가 딱 맞물려서
쫙~ 가는 것처럼 딱 가요

어디서 서야 할지도 다 알아요
늦춰, 가, 자 여기서 터뜨려, 빵!

한편, 뒤에는

보이지 않는 또 한 사람의 아픔

이 있었다.

시나위, H2O, 블랙 신드롬, 백두산, 부활, 뮤즈 에로스 등
80년대 후반 한국 밴드는 최고 전성기였는데 그 속에 시나위의 임재범이 있어요.

실은 임재범과 시나위는 오래 함께하진 못했어요.

임재범 입대

만나자마자 이별이란 말처럼, 본격적인 활동도 못 하고 헤어지게 된 거죠.

그런데 시나위 측에서 연락을 천천히 하려 했는데 누가 전달했는지 몰라도
임재범은 시나위가 다른 보컬리스트를 구했다고 들었어요.

아주 많이 낙심한 표정으로 공연장 복도를 지나는 임재범을 붙잡고 위로해주려 했지만
내 얼굴도 안 보고 슬픈 표정을 짓고 지나치더군요

– 김광한, 팝 음악 전문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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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입력 2011. 7. 9. 06:20 방송 리뷰 ⓒ 리뷰 걸이 말한다, 무단 복사, 전재 및 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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