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남영과 결혼식 임재범, 아내 위해 살 것을 다짐했지만..나는 록의 전설이다 리뷰걸이 말한다

송남영과 결혼식 임재범, 아내 위해 살 것을 다짐했지만..나는 록의 전설이다 리뷰걸이 말한다

안녕하십니까, 리뷰걸이 말한다입니다.

12일은 가수 임재범 부인 송남영 별세 소식이 팬들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감상선 암이 전이되어 사망한 송남영 씨.

1972년 태어난 그는 1991년 연극배우로 데뷔하여 주로 뮤지컬배우로 활동한바, 길었던 암 투병 기간을 포함하여 45년의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깊은 슬픔에 직면한 임재범은 아내의 장례식을 조용히 치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송남영 빈소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블로거는 지난 2011년 써놓았던 이 글을 바칩니다.

◇ 나는 록의 전설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로커들의 노래

▲ 마이클 볼튼의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를 부르는 임재범.

그는 이제 로커 임재범 대신 한국의 마이클 볼튼으로 불렸다. TV는 그를 소울과 발라드 가수로 서라고 강요했다.

“이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하는 리듬 앤드 블루스나 소울이나 발라드는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이 아니에요”라고 집어던지고 오대산으로 가서 1년 동안 혼자 있었거든요.

잠적 1년 만에 돌아온 임재범은 신대철과 함께 다시 시작하고자 했다.



1992년 신대철을 비롯한 시나위 멤버들과 함께 `특종 TV 연예`에 출연한 임재범은 인터뷰에서 “혹시 또 한 번 증발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글쎄요. 증발이라는 단어 자체가 날아가 없어진다는 뜻인데 제가 물이 아니므로, 더는 증발할 이유는 없고 다 말랐습니다. 이제”라고 대답하는 모습에서 젊은 시절 임재범의 반항적인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임재범은 록을 해야 하나 보다.

임재범 비상, 작사: 채정은/작곡: 임재범

하지만 2집에서 역시 임재범은 록을 부를 수 없었다. 결국, 음반을 완성한 후 그는 또 서울을 떠났다.

“표현방법이 되게 순수한 어린이 같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사실 여려서 다치기가 쉽잖아요. 그러다 보니 폭발하는 것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 김형석, 작곡가



▲ 임재범 2집 비상, 3집 고해, 4집 Story of Two Years 앨범 사진들

앨범을 내고 잠적하고 다시 돌아와 앨범을 내고 잠적하는 일이 반복됐다.

“임재범 씨는 옛날부터 계속 록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죠. 계속 가슴 속에 담아두면서 그렇게 솔로 활동을 했었죠. 사실상은” – 김도균, 백두산 기타리스트

◇ 록은 절대 죽지 않는다

▲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임재범, 2011년 6월 19일

영원히 야인으로 살 것 같던 임재범. 그가 긴 공백을 깨고 대중 앞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 봄이었다. 올림픽 축구 아시아 예선 한국-요르단전, 그는 이 자리에 서기까지 몹시도 망설였다.



영광스러운 자리였지만 그로서는 처음 경험해보는 낯선 일이기도 했다.

“로커의 자존심을 고수하고 싶었어요. 끝까지. 그래서 상암 경기장이 됐건 어떠한 행사가 됐건 나가면 나의 자존심이 무너진다고 생각을 한 거죠. 가족은 생각지도 않고 저의 자존심만 10년을 지킨 거죠.”



▲ 사진 = 임재범 송남영 결혼식 2001년 2월 11일

임재범에게 올해는 결혼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는 결혼식 날 삭발까지 하며 아내를 위해 살 것을 다짐했다. 하지만 가장으로써 그는 그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다. “저작권료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곡 쓴 것도 많지가 않고 그래서 한 달에 적을 때는 7,700원이 들어왔을 때도 있고요. 3달 정도 돈이 안 들어왔을 때도 있었고요. 겨울에도 낮에는 있는 옷 없는 옷 다 껴입고 있으라고 해요. 살아야 하니까.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난방이 들어오거든요. 그거 한 번 켜요. 너무 추우면 안 되니까.”

“지수 다섯 살 때 `아빠 너무 추워요.` 그러는데 그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못 참겠더라고요. 내 새끼가 춥다는데 돈이 없어요. 중국 음식점에 만 이천 원짜리 세트가 자장면 두 개에 탕수육 하나를 일 년에 두 번 정도 밖에 못 먹었어요. 너무 먹고 싶다고 그래서. 그것도 고민 집사람하고 거의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다 시켜요. 주저주저하다가… 패밀리 레스토랑이요? 택시요? 못 타요. 걸어 다녔어요.”

▲ 수요예술무대에 출연한 임재범 눈물, 2011년 3월 23일
독종 작사: 조은희/작곡: 황성제

임재범이 TV 무대로 돌아온 건 아내 때문이었다. 올 초 갑상샘암이었던 아내에게 간과 위까지 전이됐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어떻게든 병원비를 마련하고 아내를 살려내야 하는 것이 그의 몫. 노래는 임재범이 아내에게 바치는 사과이며 다짐이고 사랑이었다. “제가 독종이 아닌데 독종처럼 살고 싶었어요. 정말 독하게. 회한의 눈물이었어요. 아.. 내가 이렇게 해야 하나. 수요예술무대도 나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아내 옆에 있고 싶었고 새끼랑 같이 어린이대공원 놀러 가서 평상시처럼 살고 싶었는데 이게 시작이 되면 가족과 멀어질 텐데. 복잡한 상황의 눈물이었어요. 각오의 눈물도 있고 회한의 눈물도 있고 그리움의 눈물도 있고”

세상 속으로 나오는 아빠를 위해 딸 지수도 응원을 해주었다. 임재범의 등장은 모두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아마 이 프로그램에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예측을 했죠. 그런데 뜻밖에 본인이 하겠다고 나온 것에 대해서 한 번 더 놀란 거죠.” – 장기호/작곡가, 가수

▲ 나는 가수다, 임재범 여러분 작사/작곡: 윤항기

노래 실력으로 순위를 정하는 프로그램. 하지만 임재범에게 여러분은 경연곡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지금 아내도 많이 행복해졌고 또 남편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 보고 지금은 암도 많이 호전됐고요. 희생이 사랑의 기본이라는 걸 이번에 체험을 한 거죠. 내가 부서지니까 한 사람이 사는구나. 정말로 많이 좋아졌어요. 신기해요. 놀러 다녀요. 얼굴이 하얘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힘이 없어서 말도 못 했던 사람이 지수 데리고 바닷가도 갔다 오고.” (최초 입력 201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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